다만 하루 종일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 때때로 자신에게 일깨워 주시고 때때로 자신에게 말해 주셔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를 일상의 삶에서 떼어 놓지 마십시오. 한번 이와 같이 공부해 보십시오. 한 달이나 열흘쯤 지나면 문득 스스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만약 일상생활을 떠나 따로 갈 곳이 있다면, 이는 물결을 떠나 물을 찾는 꼴이며 그릇을 떠나 금(金)을 찾는 꼴이어서, 찾을수록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157-159쪽)
대개 세상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은 오래도록 번다하고 피곤한 세간의 일에 집착해 있다가 문득 누구에게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라는 가르침을 받고서 잠깐이라도 가슴속에 일이 없어지면 곧 이것을 마지막 안락한 곳이라 여기지만, 이것은 돌로 풀을 잠시 눌러 놓는 것과 같은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비록 잠시 소식이 끊어짐을 느끼겠지만,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이래서야 적멸(寂滅)을 철저히 얻을 때가 있겠습니까? (161쪽)
모름지기 자기 자신이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아야만, 저절로 옛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옛사람의 말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깨끗한 마니주(摩尼珠)가 진흙탕 속에 아무리 오래 놓여 있더라도 때가 낄 수 없는 것은 그 바탕이 본래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어리석을 때에는 잡다하고 피곤한 경계에 속아서 물들지만, 이 마음의 바탕은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듯이 본래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184쪽)
사대부들은 도를 배우더라도 대개 확실히 깨닫지는 않습니다. 입으로 도를 논하고 마음으로 도를 생각하는 것을 없애 버리면 곧 아득하여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이곳이 바로 좋은 곳임을 믿지 않고, 다만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헤아려 도달하려고 하며 입 속에서 분명하게 말하려고 할 뿐, 그것이 잘못인 줄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257쪽)
그러나 번뇌할 바로 그때에 이 번뇌가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자세하고 철저히 따져서 찾아보십시오. 만약 번뇌가 일어나는 곳을 찾을 수 없다면, 지금의 이 번뇌는 도리어 어느 곳에서 올 수가 있겠습니까? 번뇌하는 바로 그때에, 번뇌가 있는가 없는가, 번뇌는 헛된 것인가 진실한 것인가, 하고 거듭거듭 탐구해 보면 마음은 갈 곳이 없습니다. 생각하고자 하면 다만 생각하기만 하시고, 울고자 하면 다만 울기만 하십시오. 울고 또 울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마음속의 수많은 은혜롭고 자애로운 습기를 모두 털어 버리면, 자연히 물이 물로 돌아가듯이 나의 번뇌 없고 생각함 없고 근심 없고 기쁨 없는 본래면목을 회복할 것입니다. (286쪽)
화두를 자신에게 말해 줄 때에는 여러 솜씨를 발휘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가고ㆍ머물고ㆍ앉고ㆍ눕는 곳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며, 기쁘고ㆍ성나고ㆍ슬프고ㆍ즐거운 곳에서 분별하지 마십시오. 말해 주고 또 말해 주고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이치의 길이 없어지고 맛이 없어져서 마음이 초조하고 갑갑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자신이 목숨을 버릴 때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와 같은 경계를 만나서 곧장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계가 바로 부처 되고 조사 되는 소식입니다. (348-349쪽)
다만 스스로에게 일깨워 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기만 할 뿐이어야 하고, 왼쪽으로 가도 옳지 않고 오른쪽으로 가도 옳지 않습니다. 또 마음을 내어 의도적으로 깨달음을 기다려서도 안 되고, 말을 꺼내는 곳에서 곧장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 현묘(玄妙)하다고 이해해서도 안 되고, 있음과 없음으로 따져서도 안 되고, 참된 없음이라고 헤아려도 안 되고, 일 없는 방 안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되고, 부싯돌 불꽃이 튀고 번갯불이 치는 곳에서 알아차려서도 안 됩니다. 곧장 쓸 마음이 없고 마음 갈 곳이 없을 때에, 공(空)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기가 도리어 좋은 곳이니, 문득 쥐가 소의 뿔 속으로 들어가 곧장 꼼짝도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489쪽)